[하니~] 지뢰찾기. 아하하하. ^^;;;; 하릴없이 지뢰찾기를 하고 있는 참에. 문득 떠올라 버려서;;; 쓰다보니 느낀거지만, 어쩐지 야오이 설이라는 느낌보다는-_- 지뢰찾기 게임홍보 내지는 팁 용 소설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하, 아하하하. ^^;; ----------------------------------------------------------------------------------- "으-아아아아아악!!! 이런 씨댕!!! 어떻게 이럴수가아아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달려와 컴퓨터 전원을 켠 지 약 30초 후. 모니터를 바라보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해대는 내게로 천천히 걸어오며 도훈이 녀석이 입가에 비웃음을 띄웠다. "에헤. 절대로 깰 수 없다고 여유부리더니. 깨졌냐?" "이런 빌어먹을!! 제에에엔자앙!!!!!!!! 으아아아아아~~~~" 내가 발광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컴퓨터에 기본 옵션으로 딸려있는. 지상 최대의 게임, 언제 어디서 해도 질리지 않는, 이것을 만든 사람은 천재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지.뢰.찾.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는 지은지 10년 정도밖에 안됐으나, 부실공사 탓인지 금새 무너질 것처럼 되버린 데다가, 비가 심하게 오는 날이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겨버리는 현상이 비일비재. 학부모와 학생들의 탄원이 극심하여 이사장은 모처럼 큰맘먹고 신교사를 지어주었다. 그다지 휘황찬란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말끔하고. 무엇보다, 비가 많이 와도 노트에 물이 툭-하고 떨어져 정성껏 갈겨쓴 수성펜의 글씨를 번져버리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황금같은 점심시간에, 곧 나무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음산한 구교사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교사에는 정보화교육을 위한 최고급 사양-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게다가 인터넷까지 되어주는 고마운 컴퓨터가 30대정도 있긴 하지만, 생각해보라. 일명 pc실은 오후 3시에 바로 문이 잠겨버리는 데다가, 우리에게 주어진 널찍한 자유시간이라고 해봐야, 겨우 점심시간일 뿐이다. 현재 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략 1800여명의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일제히 그 좁아터진 pc실에 우르르 몰려가 60분의 1의 확률로 컴퓨터를 차지하겠다고 설쳐대는 꼴을.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교사에 있는 내가 정보화시대에 뒤떨어져 인터넷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의 계산으로는, 인터넷은 집에 가면 얼마든지 내 컴퓨터로-그닥 좋진 않아도- 충분히, 다음날 아침 벌개진 눈으로 등교할 정도는 할 수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나는, 지뢰게임 예찬론자-라는 것이다. 구교사에는 주로 특별활동용 부서 몇몇이 들어앉아 있는 상태에, 예전 우리가 사용하던 교실들은 창고로 쓰이기도 일쑤다. 그런데, 예전에 교무실로 쓰이던 곳에 남아있는 컴퓨터 중, 작동이 되는 컴퓨터를 발견한 것은 바로 한달 전. 물론 인터넷이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본 옵션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 그리하여 나는, 점심시간이 될 때마다 구교사로 달려와, 느긋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지뢰찾기에 푸-욱 빠져 있는 것이 학교생활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초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지뢰찾기 중, 역시 나는 99개짜리 상급(전문가)을 즐긴다. 하지만 예의상, 깨끗하게 999초로 입력되어 있는 최고기록에 초급, 중급도 멋진 나의 이니셜인 H.D.Y^^를 새겨넣으며 즐거워해줬다. 최고기록을 세우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때우며 지뢰게임의 오묘한 맛을 만끽하던 내게, 생각지도 못한 도전자가 생긴 것은 약 2주 전. 그 날도 즐거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구교사로 달려왔었다. 즐겁게 컴퓨터를 키고, 즐겁게 지뢰찾기를 클릭한 후, 상급을 한참 해대다가, 210초라는 기록-_-이 나왔는데도 최고기록으로 기록이 안되길래, 저번에 내가 몇초를 했었지~?하고 헤실대며 최고기록 버튼을 클릭했었다. 그런데. 초급 : 29초 이것도. 중급 : 78초 기록이냐. 상급 : 198초 병-신. 이라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떠-억 하고 뜨고 만 것이었다. 우롱조가 분명한 그 말투하며, 늘어뜨려진 병-신에, 뒤에 붙은 깔끔한 마침표들이라니. 그 날의 나의 충격은, 소리 한번 못지르고 뻐끔뻐끔거리다가, 뒷골이 당겨 끄어어억-하는 흉한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가는 상황을 발생시켰으며, 내 성역을 침범한 건방진 그 놈을 향한 분노로, 평소의 느긋한 마음은 접고, 경쟁심에 불타오르며 마우스를 클릭하게 만들었다. 초급 : 26초 죽었어!!!!!! 중급 : 75초 씹-새!!!!!!! 상급 : 191초 어떠냐!!!!!! 3일이 걸린 것 치고는 몇 초 줄지 않은 기록이지만, 평소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뢰찾기에 임해온 나로서는, 솔직히 저 정도 기록도 쉽지는 않았다. 특히 지뢰가 99개나 포진해있는 상급의 경우에는, 일단 깨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하다보면 꼭 두 개 중 하나를 찍어야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므로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일단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에 흡족해하며 코웃음을 친지 이틀 후. 초급 : 24초 쯧. 중급 : 72초 웃기지도. 상급 : 179초 않는군. [아아아아아악!!!!!!!!!!!!!!! 이런 씨발스런 일이!!! 미치겠네 진짜!!]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뢰찾기를 임하는 내 자세에서, 그 이후로는 절대로 즐기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1초에 목숨을 거는 불타오르는 전투적 자세로, 눈알이 빠지도록 숫자를 암산해가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는 내가 있을 뿐. 그렇게 오가던 다정스런 경쟁은 결국 4일 전, 내가 예상치못한 쾌거를 이룩함으로써 종결되는 듯 했다. 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지뢰찾기에서는 물론 숫자를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초반에 몇 번 클릭을 할 때 한 두번 좌-악 하고 터져버리면,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 둘 중 하나의 지뢰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위험빈도율도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4일 전, 나는 해내고야 말았다. 이제까지는 해내지 못했던 업적을 이루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해냈어!! 내가 해냈어 도훈아!!! 이거 좀 봐바!!!! 음홧홧홧홧!! 끝났다고 이제!!!] 분명 그 재수없는 새끼가 남겨놨던 저번 기록은, 초급 19초, 중급 61초, 상급 170초였었지. 훗. 후훗. 후하하하하하하하핫!!!!!!!!! 초급 17초. 중급 58초. 이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중요한 것은 상급. 무려. 163초!!!! 므하하하하하핫!! 이것만은 절대 깰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루어낸 업적인데. 이~따시만한 큰 폭탄이 하나, 그리고 그럭저럭 적당한 크기의 폭탄이 하나, 터져주어서 이런 쾌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이더냐. 둘 중 하나를 찍어야 하는 지뢰게임 최악의 순간이 무려 두 번이나 찾아왔는데도, 신기(神氣)가 내렸는지 맞춰버렸단 말이다!!!!!!! 흥, 네놈한테 그런 행운이 따라주실 리가 없지. 크크크크!!!!!!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았던 기분의 내가 도훈이놈에게 달려가 와락 껴안으며 소리지르자, 녀석은 물고 있던 담배를 쿨룩-하며 떨어뜨리고는, 길게 주욱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백.....163? .....미친 거 아니냐, 너. 그 속도로....] [무슨 말이 그래!! 축하는 해주지 못할망정~~ 으하하하~] 절로 흥이 넘쳐흐르는 기분에 도훈이놈을 꽈악 껴안아주며 배시시-하고 웃자, 모니터를 응시하던 시선이 내게로 향하고는 곧 부드럽게 기울어진다. [수고했다.] 커다란 손이 머리위에 턱, 하고 얹어져 조금은 거칠게 흩뜨러뜨리는 손놀림에도 그저 좋다고 헤헤 웃었다. 정말 이번이 끝이라고 믿었고, 이 재수없는 대결도 이것으로 쫑이라고 생각하여. 승자의 여유로 녀석에게 메시지를 남겨주기로 했다. 본래의 최고기록란에는 자랑스러운 내 이름-이니셜이 아닌 풀네임-인 '함단열^^v'을 새겨주었고, 바탕화면에 메모장을 만들어, [지뢰찾기 보아라.txt]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 크크크크크. 네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즐거웠었다. 핫핫핫!! 뭐- 저 위대한 기록을 깨지 못하더라도, 너무 너의 운에 대해서 절망하거나 그러지는 말도록 해. 괜히 멀쩡한 놈 좌절시키는 취미는 없는 몸이시거든. 음홧홧홧!!!! 이것도 인연인데, 너무나도 위대해 보이는 내 얼굴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찾아와도 좋아. 2학년 3반, 함단열 님이시다. 음홧홧홧홧홧홧!!!!!!!!!!!!!!!!!!!!!!!!!!!!!!!! - 있는 거만, 없는 거만 잔뜩 떨어놓은 메모를 남겨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묘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도훈이놈의 새끼손가락을 쥐고 걸어나온게. 바로 나흘 전. 느긋한 마음으로 그 다음날 컴퓨터를 켠 후,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의 자만심 가득한 메모를 다시 한번 읽어보며 승리감을 만끽하고자 메모장을 클릭했더니. 내 말 끝에 뭔가가 쓰여져 있었다. [엥?] - 흠. 꽤나 좋은 기록이라는 거, 인정해주지. 하지만 내가 그 기록, 못 깰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야. 그쯤은, 사실 가볍거든. 나-한텐. 짧은 시간이겠지만 승리감을 맛보도록 해. - [헹~ 이 자식 허풍떠는 것 좀 보게.....에라이~163초가 남의 집 칠삭둥이 이름인줄 아냐?] 비웃으며, 나는 메모장에 커서를 옮겨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 풋. 자존심 상해서 허풍떠는 건 이해해주마. 뭐,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야~ 내기라도 할까? 앞으로 3일이내에 니놈이 내 기록을 깬다면, 뭔가 조건을 들어줄께, 내가. 원하는 거 있으면 말만 해라~ 음홧홧홧!!!!! - 그 다음날. - 진심이지, 그 말. 조건은, kiss다. 3일 후, pc실에서 대면하자고. 기록에 자신이 없다면, 뭐, 내기는 그만둬도 괜찮아. 이해해주지. - [뭐...뭐?? 키....키스?!! 이 새끼가 미쳤나.......] 화들짝 놀라며 내뱉는 내 말에, 창가에 기대서서 담배를 꺼내물던 도훈이놈이 순간 흠칫, 하는 것 같았다. [뭐야?] [이것 좀 읽어봐라. 어떤 새낀지 명물이다.] 말끔하게 뻗은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모니터에 스윽 고개를 들이대는 도훈이놈의 옆 얼굴이 시선에 와 닿았다. 외꺼풀의 길게 찢어진 작지 않은 눈을 덮고 있는 속눈썹이, 사내녀석 치고는 꽤나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왼쪽 눈은 외꺼풀이지만, 오른쪽 눈은 쌍꺼풀이다. 그 밸런스가 또 미묘한 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짝짝이 눈으로 눈웃음이라도 칠 적에는, 예의 40~50대 아줌마 선생들마저도 뻑 가버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런 서비스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짙은 눈썹이 조금 치켜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자만심에 가득찬 건방진 도전자놈을 향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말을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학교는 100% 순종남학교다. 선생 중에서도 여선생이 4명 남짓밖에 안되는 남학교란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하나의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서..설마....여선생인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걸 요구할리가.......] [.......]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잘 생긴 얼굴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슬핏 채우며 나를 응시하는 녀석의 시선에, 나는 어색하게 아하하, 하고 웃었다. 하긴. 여선생이라도 어쩐지 무리다. -_- 말투에서 남자 느낌이 어렴풋이 묻어나는 걸 보면, 여자는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죄다 40~50대인 아줌마 선생들이 구교사에 들어와앉아 경쟁심에 불타며 컴퓨터로 지뢰찾기를 하는 데다가, 나에게 병-신 운운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99.9% 사내새낀데. 미친 거 아냐, 정말. 그리고 뭐? 기록에 자신이 없다면??? 하~ 허풍도 정도껏 하시지!!!!!!!!!!!!!!! [.....어떻게, 할거야.] 낮게 깔린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울려나와 귓가를 간질이자, 한껏 비웃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입술을 비틀며 내뱉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런 건방진 새끼, 자존심을 아주 깔아뭉개줘야지. 헹~나는 나의 운을 믿는다고!! 아무래도 신기(神氣)까지 받아 세운 나의 기록이 그리 쉽게 깨질쏘냐!!] 콧방귀를 뀌며 마우스로 커서를 옮기는 나를 보며, 도훈이놈의 매끈한 입술선이, 조용히 호를 그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그랬는데.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기록이. 초급 : 10초 훗. 중급 : 43초 Game. 상급 : 146초 Over. "말도 안돼.....말도 안돼.....이건 진짜 말도 안돼.....이 새끼 진짜 미친거 아냐?? 어떻게 146초가 나올 수가 있냐고!!!! 우리 학교에 혹시 박수무당 다니고 있었냐?? 아아악!!!!! 뭐라고 말 좀 해봐 명도훈!!!!!" 날카롭게 깎여진 듯한 턱선을 매만지며, 어딘지 흐뭇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던 녀석은, 발악을 해대는 나를 보며 피식-하며 눈웃음을 쳤다. 헉. 사내새끼가 그런 눈웃음 좀 치지마라. 사람 애간장 녹는다니까...... 아니아니, 이게 아니지. "왜...왜 웃고 지랄이야 너 이 새끼!!! 너는 니 친구놈이 왠 변태새끼한테 입술박치기를 당하게 생긴 이 위기가 진정 즐겁냐?? 어엉??!" "...함단열." "왜...왜." 여전히 눈가에 웃음기를 담고 있는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바람에, 바락 소리를 질러대던 나는 나도 모르게 머뭇거리며 대답하고야 말았다. 눈썹을 잔뜩 치켜올리고 있는 내 미간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슬쩍 문질러주며, 가깝게 다가온 도훈이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까이서 보는 오늘의 도훈이놈은, 어쩐지 죽이게 멋져보인다. 뭐, 평소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놈이지만. 어흠. 흠. 기집애들도 부러워하는 매끈한 피부에, 이목구비 뚜렷한 잘난 외모. 길다란 키에 탄탄한 몸까지. 솔직히, 같이 길거리 돌아다니면 어깨가 으쓱거린다. 이 잘난 놈이, 내 친구라니까요-하는 레이저빔을 무언중에 사방팔방으로 쏘아대는 나는, 같은 남자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쥐뿔도 없는 놈이다. 어차피, 키도, 몸도, 저 샤프한 얼굴도. 따라잡기는 무리이지 않느냔 말이다. "뭐, 하나 알려줄까." 엄지손가락으로는 내 미간을 문질러주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는 볼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을 꺼내는 녀석의 목소리에, 어쩐지 등줄기에 휘익-하고 냉수 한줄기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가 점점 다가와, 내 귓가로 접근하고는, 속삭인다. "너. 지뢰 체크한 다음에 숫자에 대고 마우스 버튼 두 개 동시에 누르면. 한꺼번에 터지는거 몰랐지." "어.....어엉??" 귓가를 간질이는 따스한 숨결에 나도 모르게 움칫, 하다가, 녀석의 말에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여전히 눈가에 웃음을 담고 있던 녀석은, 곧 지뢰찾기를 클릭하고는, 마우스를 몇 차례 움직이기 시작했다. "봐. 여기서, 이렇게 하면." "엥. 에엥??" "넌 1같은 경우 일일이 주변 다 클릭하지. 이럴 때 1에 마우스 갖다놓고 버튼 두 개 동시에 누르면, 봐. 한꺼번에 터지잖아." "으에에엥??" "시간단축되는 방법이지. 뭐, 의외로 너 마우스 클릭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긴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신(新)기술에 나는 어안이 벙벙. 입을 따악- 벌리고 있었다. 저런 방법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하나하나, 열심히, 마우스를 옮겨가며, 행여나 잘못 지뢰를 클릭할까봐 조심조심. 그렇게 해왔는데. 이제 보니, 내가 한 건 순 노가다가 아니던가. 벙찐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에 눈앞에 서 있는 도훈이놈의 멱살을 틀어쥐어 끌어당겼다. 키 차이가 조금-_- 나서 순간 까치발을 서야했지만. "너 이자식!!! 왜 진작에 안알려줬어?!! 그럼 내가 163초보다 더 빨리..........." "키스." "뭐.....뭐??" 코앞까지 다가온 잘생긴 입매에서 흘러나오는 단어에, 나는 목청높여 쏘아붙이던 말을 툭 끊고는 멈칫거렸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한거야? "쓸데없는 전략 노출하면, 키스받기가 어려워지거든." 빙글, 웃으며 점점 다가오는 녀석의 입술, 입술, 입술............. "쪽..." 따뜻하고 몰캉한게 부드럽게 덮여지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낯선 감촉에 감히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저장된 데이터가 없는 내 뇌는 그저 우왕좌왕하며 질질 끌려갈 뿐이다. "으읍...." 그야말로 어찌할바를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녀석을 알게 된 이래 가장 가까운 간격하에 마주하고 있는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끈한 감촉이 입가를 더듬는가 싶더니, 곧 조금 벌려져 있는 채인 입술 사이를 무허가로 파고들어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뜨겁고 미끄덩한 그 생열한 느낌이 희미한 담배향과 함께 흘러들어와 가뜩이나 산소부족인 내 정신은 몽롱해지고 있는 상태. 뿐만 아니라, 볼을 쓰다듬던 커다란 손이 천천히 목덜미부터 스르륵 쓸어내려가 허리에 자리잡는 동안, 몸은 자꾸 자동으로 움칫거렸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기를 염원하는 의미로 녀석의 등을 양손으로 힘껏 후려치자, 아-하는 소리와 함께 미간을 찌푸리며 그제서야 입술을 뗀다. "하악....하악.......이....이.......이 변태새꺄!!! 뭐하는 짓이야 난데없이!!!!!!"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흘러들어오는 산소를 그 옛날 생존을 위해 엄마 젖 물듯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며 녀석에게 손가락질하자, 녀석은 씩-웃는 표정으로 엄지를 가져와 내 번들거리는 입술을 슬쩍 닦아낸다. "난데없이라니. 예고라면 3일전에 했잖아." "예고라니, 무슨 예고!!!!!!!" 어깨를 으쓱하며 조금은 잠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하반신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당혹스러움을 숨기려는 듯 배에 힘을 주고 힘껏 소리치다가. 멈칫. 했다. "예....예고......예고라고....?" "아아. 분명, 써놨잖아. 조건은 kiss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를 이해하려고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는 뇌가, 결국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러니까, 그, 나랑 지뢰찾기 대결을 하던 녀석이........" "나라는 얘기지." 하. 뭐,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이..이....이 미친 새끼......왜 그런 짓을......." "니가 요즘 나 내팽개치고 지뢰찾기에만 매달리길래, 그냥 장난 좀 쳐봤는데. 불같이 반응하길래 재밌어져서." "너.....너............" 태연한 표정으로 담배를 무는 녀석을 보며, 나는 아연함에 입을 딱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이제까지, 그런 장난질 쳐놓고 일일이 반응하는 내 반응 보면서 즐겼다말이지?? 그럼, 이따위 kiss도 장난이시다?? 가슴 깊숙이부터 울컥-하고 치솟아오르는 기분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씹새야!!!! 장난도 정도가 있지!! 그래, 내 첫키스를 장난질따위로 뺏아가니까 재밌냐? 엉? 재밌냐고 새꺄!!!!!!!" 녀석의 턱에 한방 날려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고 녀석을 노려보는데, 순간 나를 응시하던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딱딱하게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왜 지가 화난 것 같은 표정인데?? "장난? 누가??" 낮게 으르렁대는 듯한 녀석의 말투에 움칫, 해버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나는 소리를 질러댔다. 원래 싸움은 목청 큰 놈이 이기기 마련이다. "니놈 자식이지 누구긴 누구야!!! 장난이라며!!! 지 입으로 그따위로 지껄여놓고는...!!" "장난을 빙자한 진심이다." "뭐, 뭐???" 이 놈, 오늘 사람 여러번 놀래키네. 사람 말을 뚝 끊어놓고 한다는 소리가, 잠시 머리를 굴려야할 말이라니. 장난을 빙자한 진심이라니. 뭐가 진심인데?? 미심쩍은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녀석이 성큼, 다가섰다. 다가서는 서슬에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재빨리 휘감아온 녀석의 길다란 팔에 허리를 묶여, 오히려 녀석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젠장맞을, 팔 길다고 자랑하냐!!!!! "게임으로 치졸한 장난한거, 흘려버려. 키스의 도구였던 것 뿐이니까. 뭐, 고백의 도구라고 해야하나." "고....고백? 무슨...?"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을 해대는 녀석의 매끈한 입매에 시선을 주었다. 왼손을 뻗어 내 턱을 조금 들어 자신의 까만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고는, 낮게 읊조리듯 목소리를 꺼낸다. "좋아한다는, 얘기지. 함단열을." 함단열. 이 세상에 아마 그 특이한 이름은 나 밖에 없다고 자신하는데. 그러니까,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지. 누가. 니가??? 다이렉트로 충격파를 내뿜은 주제에, 태연한 표정으로 빙긋 웃음을 짓는 얄미운 녀석의 말 따위 믿어줄 성 싶으냐-라며 소리질러주고 싶었지만. 여유로운 표정인 주제에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오른팔에 조금 긴장한 듯 불필요하게 딱딱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거라든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저 까만 눈동자에 '진심진심진심진심'이라고 매직으로 쓰여져있는듯한 느낌에 나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하면 어쩔 셈이야? 보통 이렇게 쉽게들 고백하나? 그것도.....같은 남자놈한테." "나름대로 고백만 세 달은 고민한거니까. 너무 가볍게 치부하진 마." 헤에, 세 달 씩이나. 이상한 녀석이로세. 남자로써 부족한 면이라고는 쥐눈만큼도 없는 주제에, 게다가 자기 좋다는 기집애들이 한다스인 주제에, 왜 하필 같은 물건달린 남자새끼냐? 라고 물어주고 싶었지만. 2년간 친구로 삼아온 녀석에게 키스며 고백까지 받아놓고는, 호모라고 욕하며 손가락질하거나 기분드럽다며 소매로 입을 닦아내거나 하는 행동은커녕, 오 히려 가슴이 콩닥거리며 얼굴은 상기되는데다가 자꾸만 녀석의 금욕적이면서 동시에 육감적인 입매에 시선이 가는 내가 할 말은 아니다 싶어,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녀석에게 엉거주춤 안겨있는 엉성한 포즈로, 녀석에게서 풍겨오는 아릿한 체취가 코 끝에 맴돌기 시작하자 온 몸에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간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갈까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데, 다행히도 녀석이 먼저 말을 꺼낸다. "키스, 해도 돼?" 헉. 한다는 말이....... 사...사람이 생각할 시간이라도 좀 주고........ 좀 더 분위기를 잡아주던가....... 그러니까 그게.......... 이상의 내 주절거림이 변명뿐이었다는 것은, 흘끔거리며 녀석의 입술을 훔쳐보던 나의 시선과, 두 번째로 부딪쳐오는 녀석의 말캉한 입술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로 여실히 증명된다 할 수 있겠다. "므핫핫핫핫!! 어떠냐~~ 사실 니놈이 나보다 더 기록을 단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뉴 테크놀로지 필살 투클릭스킬때문이었다 말이지!! 저~얼대로 니놈의 실력이나 운이 아니란 말이야!! 보란 말이다 나의 자랑스런 기록을!!!!!!!" 상급 : 142초 함단열님~^^v "흐-음." 길다란 몸을 창가에 여유있게 기댄 채, 무관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던 녀석이 순간 눈을 반짝 빛냈다. "꽤 빠른데. 그 기록 깨기 쉽지 않겠네." "깨긴 누가 깨~~ 그야말로 최고 기록인데!!! 므핫핫핫~~~" "그-래?" 자신감이 넘쳐흘러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는 내 귓가에, 묘하게 끝을 올리는 말투로 대답한 녀석이 장신의 몸을 접어 성큼 가까이 다가오더니 반듯한 얼굴을 들이민다. "뭐....뭐야??" 저 짝짝이 눈이 호선을 그리고 있으면 요즘은 어쩐지 불안해진단 말이지. 뭐, 그 어렴풋한 불안감을 덮어버릴 정도로 멋지긴 하지만. ......콩깍지가 씌였나. "내기할까." "아하하~ 내~기?? 흥, 이번엔 정말 쉽지 않을걸? 142초가 남의 집 셋째딸 이름인 줄 아냐??" "3일내로 깨면, 뭐 해줄건데." 슬쩍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매끈하게 뻗은 검지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토-옥 치며 묻는 기세에 빛나는 자신감이 잔뜩 묻어나와, 어쩐지 아주 많이 불안해진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하루만에 깨면 해주지." "하루라. 그건 정말 운이 따라야겠는데." 잠시 시선을 하늘로 돌리며 낮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입가로 입술을 가져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까지 다가와 속삭인다. "조건이 뭔지는 알고 허락하는 거야?" 스쳤다 떨어졌다 하는 촉촉한 입술의 느낌이 묘하게 자극적이어서, 녀석에게 시선을 맞출수가 없어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 후에 애써 크게 말했다. "뭐....뭔데? 또 키스?? 흥, 하루만에 깬다면...." "키스라니, 너무 짜잖아. 게다가 그거라면." 여전히 듣기좋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하고는, 내 입술에 슬쩍 베이비키스를 하고는 말을 잇는다. "이렇게 매일 하고 있는데." "그.....그럼 뭐!!!!!!" 피부속에서 근질근질거리는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목덜미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더듬거리자, 녀석이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움켜쥔 채 끌어당겨 자신의 하반신에 밀착시켰다. 키 차이 덕택에 내 아랫배쯤에 느껴지는 그 선연한 감촉에 눈을 치켜뜨자, 녀석은 태연한 표정으로 특유의 사람 홀리는 눈웃음을 흘리고 있다. "어른들이 하는 놀이-랄까." "뭐...뭐......뭐라고!! 으읏...." 발끈, 하며 소리를 지르려는데, 녀석이 슬며시 하반신을 움직이자 느껴지는 마찰감에 나도 모르게 느껴버리고 말았다. "뭐 어때, 내 운을 시험해보는건데. 기대해 봐." "이..이.....변태 새끼!!!!!!!!!!" 녀석의 배에 사뿐한 동작으로 주먹을 먹여주고는, 배를 움켜쥐며 미간을 찌푸리는 녀석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 얼굴은 발개진 채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느라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결단코 비밀이다. 뭐 사실.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한다.;;; 지뢰찾기 - 외전 "으응.......하앗..!!" 슬쩍 다가와 입구를 간지럽히며 애태우던 녀석의 것이, 단숨에 찔러들어오는 바람에 숨이 막혔다. 잔뜩 열이 올라 녀석의 등을 부여잡고, 다가올 쾌락에 대한 기대감과 약간의 고통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뜨거운 손가락이 조심스레 미간에 올려지고, 살살 문질러준다. "인상펴라, 함단열. 섹스하면서 인상쓰면, 범하는 기분이란 말이다." "이....이 변태새끼!! 뭐라고?!!! 으읏...." 여유로움이 가득 담긴 놀리는 듯한 말투에 발끈해서 쓰다듬어주고 있던 손가락을 사납게 내치려고 했지만, 녀석의 손이 내 엉덩이를 추켜올리는 바람에 더욱 깊이 채워지는 느낌으로 나도 몰래 움찔거리며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던 놈이, 강하게 하반신을 밀어붙임과 동시에 내 것을 부드럽게 훑어버려, 앞뒤로 느껴지는 쾌감으로 내 뇌는 정상가동 불가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아앗....흡.....도..도훈아....!!!" 쉴새없이 밀어붙여올려지는 느낌을 쫓아가기에도 바쁜 나는, 결국 간단하게 절정을 맞고 말았다. 바짝 마른 입술새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듣기 민망한 숨소리를 막을 생각조차 못하고, 나는 그저 녀석의 목에 매달려진 채 부드럽게 쓰다듬어오는 녀석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때, 좋았어?" 여전히 평정을 잃지않은 것 뿐 아니라,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그 빙글거리는 말투에 고개를 들자, 단단한 팔로 내 허리를 감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가라앉은 듯한 짝짝이 눈이 호선을 그리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열이 받쳤다. 사실, 녀석과의 그, 세, 섹스는-///- 좋다. 내기로 내걸었던 내 상급 최고기록인 142초를, 진짜로 하루만에 140초로 단축시켜버리는 바람에, 이 꼴이 되버리고 말았다. 물론 처음에는, 연신 느껴지는 고통에 이성을 잃고 발광하다가, 어느 순간에 포인트를 발견해내고 세밀한 움직임으로 집중공략해오는 녀석 때문에 퓨즈가 나가버려, 결국 기절할 때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보시다시피.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가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라는 거다. 녀석은 언제나 느긋한 몸짓으로 나를 더듬어 흥분시키고, 나는 녀석의 손길에 금새 달아올라 점점 강도가 세지는 쾌락에 몸을 맡길 뿐. 녀석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나를 흥분시키고 애타게 만드는데, 나는 그저 녀석이 주는 느낌에 매달려 어쩔 줄 몰라하는게 전부다. 약이 오르는 기분에, 팩 하고 고개를 돌려 녀석을 노려봤다. 한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외모에, 조금 짧은 새까만 머리칼은 이마위에 흐트러져 있다. 흘러내린 땀에 젖은 녀석의 얼굴은, 정말로, 진심으로 말하건데 섹시해 미칠 것 같다. 거기에 추가로, 놈의 주특기인 '후광배경의 사람 홀리기용 짝짝이 눈웃음'이 슬쩍 흘려지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 아랫배로 혈기가 몰려버리는 것이다. "흠, 왜. 다시 보니까 또 한번 반하겠냐?" 요즘들어 빈도수가 꽤나 높아진 눈웃음을 흘리며, 내 볼에 혀를 내밀고 할짝, 핥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나는, 하반신에서부터 급속도로 찌르르 타고 올라오는 욕구와, 뇌에서 발생된 어떤 소망이, 역시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 신경 어느 부위에선가 두 개가 융합되어 버린 것을 느꼈다. 처음에도, 끝에도, 시종일관 저 여유로운 얼굴을 잃지 않는 얄미운 변태새끼가. 이성을 잃고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에게 매달리는 꼬라지를 꼭! 보고싶다고. "넌, 지겹지도 않냐. 이제 그만 질릴 때도 됐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의 하루일과, 구교사에서의 지뢰찾기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나에게, 창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담배를 물고 있는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흥, 네 녀석의 기록따위, 깨버릴거야!!!!! 140초따위 정말로 진짜 간단하다구!!" 큰 소리로 바락 소리지르는 나를 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던 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거야말로 무리라고 본다. 한달이나 매달렸던 주제에. 네놈은 안돼." 므흐흐흐..., 그래, 니가 그런 식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새꺄. "안된단 말이지? 나는 절대로 저 기록을 깰 수 없을거라고 장담하는 거지, 너?" 말꼬리를 붙잡고 반복하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면서,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럴 확률이 적다는 말이다. 뭐, 한달쯤 더 하다보면 깰 수 있는 기회가 한번쯤은 예의상 와줄 수도 있겠지만." "내기해!!!!!!" "....뭐?"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하던 녀석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눈빛을 빛냈다. 너, 네놈 자식, 더 이상 나한테 요구할 게 남았냐 새꺄!!!!!!!! 적당히 도톰한 그 금욕적인 입술에 물려있던 담배를 비벼끈 후, 성큼 다가온 녀석이 빙긋 웃는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조건은." "조....조.........조건은............" 으, 으.....이 말 꺼내기 진짜 어렵군. 떠듬떠듬거리며 어쩐지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슬쩍 고개를 들자, 짝짝이 눈에서 번쩍-하고 빛이 나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띄운 채 나를 보고 있는 도훈이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놈의 재수없는 표정 따위, 절대로 짓지 못하게 해주마!!!!!!!!!!!!!!!!!! "내가 위에서 할꺼야!!!" 날씨가 화창한 덕에 눈부실 정도의 햇살이 창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적절하게 불어오는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건조한 공기. 한가로운 오후의 점심시간인 것이다. ......-_-;;;; 길쭉한 눈에 의구심을 담으며, 잠시 나의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 머리를 굴리려는 것 같던 녀석이, 곧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가 싶더니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풋...푸하하하하하!!!! 그거 진심이야, 함단열?? 그러니까, 섹-스 말하는 거지." 저 낯 두꺼운 녀석!!! 그걸 꼭 그렇게 직접적인 단어로 표현해야되겠냐!!!!!!!!! 조금 상기되어버린 얼굴로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웃음기를 거두지 못한 채 배를 움켜쥐고 큭큭거리며 웃어대던 녀석은, 결국 호흡곤란까지 이르렀는지 꺼억꺼억대며 파르르 떨고 있다. 개새끼, 그게 그렇게 웃기는 말이였냐?!!!!!! "큭...크큭.....그러니까, 니가, 내 위에서 하겠단 말이지...." 산소부족으로 나보다 더 빨갛게 되버린 얼굴을 하고 접었던 등을 쭈-욱 핀 녀석은, 흘러나오는 웃음이 섞인 채로 나에게 다시 확인한다. 다시 한번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짙은 눈썹을 살폿 찌푸리더니, 중얼거린다. "흐음...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군. 내 테크닉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인 거 같은데." 그, 그건 아냐 절대!!!!!!!!!!!!! 고개를 붕붕 좌우로 흔들어대고 싶은 심정이긴 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이 원대한 계획을 꼭 달성해야 했기 때문에, 녀석이 조금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든말든 무시해야했다. "그런데, 그, 170의 단신으로 나를 깔겠다는 건, 조금 힘들지 않아?" 이, 재수없는 새끼!!!!!! 내가 결단코 너를 깔고 만다!! 깔고 말거라고!!!!!!!!!!!!!!! "할거야, 말거야?!!!!!" 잔뜩 독이 오른 목소리로 바락 소리를 질러대자, 단정한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있던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반한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는 건, 평화로운 연애의 기본이니까." 조~~~~~~~~~오았어!!!!!!!!!!!!!!!! "으으으으........눈아퍼...." 벌겋게 충혈된데다 뻑뻑해지기까지 한 느낌에 며칠전에 사둔 인공눈물을 집어들었다. 현재 새벽 4시. 정말 누가보든 미쳤다고 할 짓을, 현재 나, 함단열은 하고 있다. 무려 8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지뢰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역사는, 한 친우놈에게 꽤 괜찮은 사이트를 소개받아 이틀만에 폐쇄될 것이란 말에 밤을 꼴딱 새며 그 사이트를 탐색했던 이래로는 처음이다. 이 정도쯤 하면, 아무리 지뢰찾기 예찬론자인 나로서도, 질리기 마련. 눈을 감아도 네모난 지뢰판과 빨강파랑초록의 숫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실정까지 몰아붙여졌지만, 포기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어째서!!!! 반했다며 먼저 고백해온 그 미친 변태새끼는 그렇게 시종일관 여유만땅의 표정이어야 하며, 그 새끼의 암울한 애정이 불쌍해 마지못해 거만하게 그 고백을 받아들인-_-(사실과 다른 것 같지만) 내가 왜!! 꼭 뭐 마려운 개새끼처럼 이렇게 안절부절 녀석에게 매달려야 하냔 말야!!!!!!!!!!! 용납못해, 용납못해, 용납 못해애애애애!!!!!!!!!!! 벌개진 양쪽 눈에 인공눈물을 떨어뜨린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내가 꼭, 연습해서, 깨고야 만다. 절대로, 결단코, 깨고야 말겠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쳐다보기 무서울 정도의 몰골이다, 너."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 컴퓨터 앞에 앉는 나를 보며, 느릿하게 따라와 녀석의 지정석인 창가에 기대더니, 한다는 소리 하고는. "시끄러." 한마디 내뱉어주고, 컴퓨터에 빠져들어갈 듯 얼굴을 바싹 붙이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나를 보고 피식, 하고 웃더니, 녀석 역시 가져온 책을 집어들고는 담배를 빼어문다. 오늘로 1주일째. 녀석은 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왜인지 한달이란 장기간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로 한달씩이나는 무리고, 최대한으로 빨리 깨줄테다!!!! "아, 명도훈, 너 여기 있었냐?! 고문 선생님이 아침부터 찾던데. 너 보는즉시 데려오라고 하더라!!" 갑자기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난입한 녀석이, 대뜸 소리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누군지 고개를 돌려 확인해줄 시간 따윈 없다. 왜냐, 폭탄이 두 개나 터진데다 한참 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해대고 있었기 때문. "나중에요, 주장. 어차피 점심시간이니까." 싸가지 없는 도훈이놈은 상대가 선배든 선생이든 물고있던 담배따윈 개의치않고, 비스듬하게 창가에 기대 책을 들고 있는 자세 그대로 대답을 던졌지만, 척척 다가온 그 선배라는 사람이 휘익, 하고는 책을 뺏어버렸다. "지금 선생님 부실에 계시니깐, 얼른 가봐. 시합 출전문제 때문인 거 같았단 말이다. 약속했잖냐, 너." "하-아. 예." 선배라는 사람의 말에 조금 움찔하며 날카롭게 상대방에게 시선을 던지는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고는 슬쩍 고개를 숙이더니, 내 머리를 푸식푸식 쓰다듬고는 말한다. "점심시간 이제 15분 남았어. 난 부실 들렸다 바로 교실로 갈테니까, 시간되면 기다리지 말고 와라." "알았으니까, 빨랑 가기나 해~!" 여전히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을 던지자, 녀석은 긴 다리를 놀려 금새 교실을 벗어나 버렸다. 어쩐지 오른쪽에 있던 커다란 존재감의 부재가 선뜻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나에겐 지금 이 지뢰찾기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지뢰찾기에 원수라도 진거냐? 목숨이라도 건것처럼 하는 놈은 처음본다." 엥. 당신 아직 안가고 있었어?? 선배인 거 같아 고개를 돌려 인사라도 해야 올바로 된 예의범절의 일례가 되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대답이라도 해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고. "최고기록 깨야하거든요. 140초." "하하, 140초? 전문가는 변수가 있어서 쉽지 않지. 뭐, 자랑은 아니지만 난 133초에도 깨봤다." "뭐라고요?!!!!!!!!!!!!!!!!!" 133초. 지금 133초라고 말했지, 당신 분명!!!!!!!!!!!! 시뻘개진 눈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자, 그제서야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헉. 뭐가 이렇게 커. 키는 도훈이놈과 비슷, 내지는 조금 작을수도 있겠지만, 덩치가 상당히 크다. 도훈이놈은 매끈하게 빠진 단단한 몸이라면, 이 사람은 그야말로. 덩치다. 어찌됐든간에 나보다 키가 크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고개를 좀 더 들어 시선을 맞추자 왜인지 조금 움찔, 하더니 얼굴을 붉힌다. 뭐야, 그 반응은. 물론 부스스한 머리에 까칠한 얼굴, 벌겋게 충혈된 눈에 초췌한 내 얼굴을 보고 놀랄수도 있겠지만, 너무 티나잖아 당신. "너, 함, 함단열이군." "에에, 날 알아요?" 난 당신같은 고릴라 덩치는 처음인데. 말했다가 저 망치만한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맞기라도 하면, 나같은건 등짝이 아작날거다. 현실적인 생각에 뒷말이 새어나오기 전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 고릴라를 쳐다봐주자, 조금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슬쩍 돌린다. 뭐. 덕분에 빨갛게 달아오른 귀가 보이긴 했지만. "도, 도훈이랑 친하다고 해서, 조금."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는 태도가, 어쩐지 심히 안어울린다. 그 고릴라만한 등치에 강하게 생긴 인상인 주제에 뭐야, 이 어설픈 태도는. "그래서, 133초는 정말이에요?" 용건은 이거다. 빨개진 당신 얼굴따위 신경쓸 시간이 없다고, 나는. 대뜸 툭, 내뱉자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끔 보더니 재빨리 시선을 어긋나게 멀리 보낸다. 이봐. 사람이랑 말을 할 땐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라고, 어렸을 때 유치원 선생이 안가르치든? "진, 진짜야. 지, 지뢰찾기는 조금 잘하는 편이라서." 고릴라의 말은, 나에게 한줄기 서광이 되는 것 같았다. 도훈이놈은 검도부 전국대회 출전문제로 현재 이 자리에 없고, 증인 또한 없다. 나 대신 자칭 지뢰찾기를 잘한다는 이 고릴라가 기록을 깨주고, 이름만 내 이름으로 새겨놓으면 문제될게 뭐 있냔 말이다. 어쩐지 조금 치사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됐다고. 이게 다 녀석의 그 흐트러진 표정을 보기 위해서니까!!!!!!!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긴장되어 버리는 녀석의 그 얼굴을 잠시 떠올리다가, 고개를 붕붕 휘둘러 이성을 되찾고는 고릴라의 양 손을 잽싸게 쥐었다. "선배, 내 일생일대의 부탁이에요. 지뢰찾기, 140초의 최고기록을 깨주세요!!!!" "으, 응? 아, 아......" 장애라도 있는 건지 잔뜩 더듬거리며, 얼굴은 바늘로 슬쩍 찌르면 뻥-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빨개진 상태로, 손을 잡고 있는 나에게도 분명히 전도될 정도로 파르르 떨고 있던 고릴라는, 곧 멈칫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릴라를 의자에 앉혀놓고 오른손을 쥐어 마우스 위에 올려놓아준 뒤에 말했다. "이제 10분가량 남았으니까, 그 전에 깨줘야되요. 꼬옥!!!!" 어깨에 손을 턱 올리고 꽈악 쥔 뒤 불타는 투쟁심으로 이를 악물고 말하자, 고릴라가 잠시 나를 돌아보더니 어쩐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는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 오오오오. 이것이 진정 고수의 실력이란 말인가!!!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이 지뢰찾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도훈이놈은 나랑 대결하는 동안 몰래 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고, 그 이후로는 지뢰찾기를 하는 걸 본적이 없다. 그런데, 진정한 130초대의 실력이란 것은 이런 것이었군, 하는 생각과 함께 경탄을 자아내는 재빠른 손놀림이 금새 네모난 지뢰판들을 제거해나가고 있었다. "아, 좋아요! ....그래, 그거에요!! 앗, 벌써 100초 넘어가고 있어!! 빨리빨리!!!!!" 한 네다섯번 실패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덩치 큰 늑대개를 연상시키는 얼굴에 잔뜩 풀죽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선배를 연신 독려하여 여기까지 왔다. 남은 지뢰는 13개. 잘하면 할 수 있을거야!!! 이, 이제 두...두개!!!!!!!!!!!! "서, 선배, 자, 잘 찍어야 되요!!!" 시간은 130초를 넘어섰다. 이것만 제대로 맞추면, 맞추면!!!!!!! 신이여,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관세음보살, 알라신, 세상 잡다한 신들이여!!!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줘요!!!! 배어나온 땀으로 축축해진 두 손을 깍지끼고, 듣고있을지 모르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고 간절히 빌었다. 저는, 꼭, 꼭 도훈이놈이 안타깝게 날 바라보면서 매달리는 걸 보고싶단 말이에요!!!!!!!!! 틱-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가운데 있는 노란 스마일에 까만 선글라스가 씌워짐과 함께, 네모난 창이 나타났다. "선배에에에에에에에!! 해냈어! 해냈다구요!!!! 으아아아앗싸아아~~" 저절로 좌악 찢어지는 입으로 괴성을 질러대며, 눈앞에 있는 선배의 어깨를 팡-팡- 쳐대며 감격에 겨워 날뛰어대자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던 선배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 이름으로 적을까? 함, 함단열로." "아무거나 좋아, 아무거나 좋다구요!! 으앗싸아~~ 도움을 준 모든 신들, 고맙습니다!! 선배!! 진짜로 고마워!!! 음홧홧홧홧홧!!!!!" 느릿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쳐서 [함단열.] 이라는 이름을 새겨넣고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서는 선배에게 달려들어 꾸악~ 껴안아 주었다. 물론, 그 고릴라같은 덩치 때문에 내 두 팔은 겹쳐지진 못했지만. (결코 내 팔이 짧은 건 아니다) "함, 함, 함단열, 이, 이, 이러지...마......으아........" 어쩐지 버둥버둥거리는 고릴라를 다시 한번 힘을 주어 꾸악- 껴안고는 떨어져 나와, 정말 잘익은 사과 부럽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선배를 향해 방긋, 웃어주자, 정말 터지는가 싶을 정도로 발개진 채 뒷걸음질을 친다. "그, 그, 그럼 난 이만 가, 가볼게. 아, 아, 안녕!!!!!!" 잽싸게 나를 피해 문으로 달려가는 선배의 뒷통수를 향해 손을 힘껏 흔들며, 나는 다시 한번 소리질렀다. "진짜로 고마워요 선배!!! 으앗싸아~"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가로 웃음이 질질 새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한 채 나는 연신 웃어댔다. "주장!! 주장!!! 왜그래요 주장!!!!" 부실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던 검도부원 3명은, 헐떡거리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쓰러져버리는 주장을 보며 너나할 것 없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다, 다친겁니까??" "어디 아프기라도 한거에요? 주장! 괜찮냐구요!!! 정신 좀 차려봐요!!!!!" "야, 안되겠다, 주장이 넋이 나간 거 같아. 그거 가져와!! 주장 정신차리는데는 그게 최고야!" 한 녀석이 책상위의 뭔가를 손가락질하자, 쓰러져있는 주장을 부축하던 녀석이 달려가 책상위에 있던 까만 지갑을 들고 왔다. "주장! 정신 좀 차려봐요!! 이걸 봐요!!!!" 지갑이 활짝 열리며, 투명한 비닐을 통해 끼워져 있던 사진이 드러났다. 고개를 살짝 돌린 채, 활짝 웃고 있는 한 사람. 흐릿하게 눈을 움직여 그 사진을 본 주장은, 벌떡 몸을 일으켜 지갑을 낚아채더니 품안에 끌어안았다. "포옹, 포옹 했어......안아봤다구........"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는 주장을 보던 세 사람은, 경악한 얼굴을 금치 못했다. "포옹을 해봤다구요?!!! 그, 함단열과 말입니까??" "으악! 말도 안돼!! 그건 페어플레이가 아니잖아요!!! 도대체 어느새!!!" "잊어버린 겁니까, 주장? 우리는 함단열의 그림자로써 그저 지켜만 보기로 했었잖아요!!" "내가 아니야!! 나, 나, 나를 안아줬다구!!!!!!!!!" 상기된 얼굴로 우렁차게 외치는 주장을 바라보며, 나머지 세 명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럴리없어- 그럴리 없잖아- 라는 말따위를 주절거리며 차례차례 바닥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함단열이 지뢰찾기에 빠져있다는 소문을 듣고, 열심히 지뢰찾기를 한 보람이 있었어....." 주저앉은 자세로, 먼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주장의 모습은, 장래 촉망되는 검도부의 미래가 진정 밝기만 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깼다고?" "와보기나 해!! 크크크크.....날 무시했겠다? 이 정도는 우습다니까!!!" 가슴을 탕탕 때리며 자신감에 넘쳐 소리치는 나를, 그야말로 미심쩍다는 눈으로 가늘게 쳐다보더니, 한 손엔 가방을 든 채 내 손에 잡혀 도훈이놈이 따라왔다. 슬슬 해가 질 때가 되어가는지 조금은 주황색으로 변해버린 빛이 구 교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는 식어버린 바람이 새어들어 조금은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컴퓨터로 단숨에 달려가 전원을 키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다가온 도훈이놈이 턱, 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지뢰찾기를 클릭하고, 최고기록을 클릭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흥분감과 초조감, 조금의 불안감이 있기도 했지만, 아주 자신있게 나는 마우스 버튼을 클릭했다. 상급 : 136초 함단열. 감격의 물결이라는 것은 바로 지금 이런 내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말임에 틀림없으리라. 어쩐지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는, 나는 고개를 돌려 도훈이놈을 바라봤다. 자, 어떠냐-하는 표정을 알아챈 도훈이놈은, 여유있게 창가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성큼 다가와 책상에 손을 얹고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뚝, 하고 떨어져버릴 것 같은 눈물 때문에 앞이 흐려져 손으로 북북 닦아내고는, 가까이 다가온 도훈이놈의 옆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그래. 이제 볼 수 있는거야. 이제는 볼 수 있을거라고!!! 그, 천하의 명도훈이 내게 애원하는 모습을!! 단정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촉촉한 두 눈엔 나를 원하는 욕망을 담고서, 그 아름다운 입술선을 살짝 벌린 채 나를 보는......................으윽. 달아오르는 것 같은 몸에 다시 한번 머리를 붕붕 휘젓고는, 도훈이놈을 바라봤다. 세세하게 뻗은 눈썹이 조금 꿈틀거리더니,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흥, 그렇게 백 날을 봐라!! 어디 136초가 146초가 되나!!! 므핫핫핫핫핫핫핫!!!!! "함단열." "흥, 어때? 이제 넌 할 말 없어!!!! 내가 이겼다구!!!!!!!"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녀석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올리자, 녀석은 잠시 복잡다난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렇게 나를 깔고 싶었다니, 어쩐지 씁쓰름하군."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깔고 싶었다는 표현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녀석에게 받는 다정한 애무가 좋고, 녀석의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짜릿한 순간도 좋으며, 내 안에서 움직이는 녀석의 강렬한 느낌 역시 너무, 좋다. 솔직히 내가, 정확히 171.8cm의 키인 내가, 188cm인 저 명도훈 녀석을 아래에 깔고 있는 장면은 조금- 아니 많이 위화감이 있고, 녀석의 곧은 목덜미, 예쁜 쇄골, 바른 어깨선, 탄탄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무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좋긴 하지만, 나는, 역시 받는게 더 좋다. 그건 녀석의, 그야말로 테크닉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_- 녀석이 나에게 해주는 것만큼 나는 녀석을 만족시킬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또한, 내 그것을 녀석의 그, 그, 그곳에 넣...넣는다는 건 어쩐지, 아주, 너무나도!! 그림상으로도, 느낌상으로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물론 녀석의 새하얗고, 탄탄한 엉덩이는 예쁘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니다. 역시 나는 받는게 좋다는 말이다. 결론은, 나는 너를 깔고 싶었던 거라기 보다는, 언제나 항상 여유롭고 빙글거리는 네 녀석이 흥분하고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쪽이 더 가깝다. 젠장. 내가 더 변태같잖아!!!!!!!!!!!!!!!! "아. 이런."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낮게 들려오는 웃음기 담긴 녀석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매력적인 짝짝이눈이, 슬쩍 호를 그리며 반짝이고 있다. 뭔가. 아주. 심히. 불길한....예, 예감이............ "미안. 너무나도 훌륭한 기록에 넋을 잃고 있다가, 손이, 미끄러졌다." 뭐, 뭐라고?? 말의 내용과는 달리 약간 놀리는 어감을 캐치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초급 : 999초 중급 : 999초 상급 : 999초 999. 999. 999. 왜, 저 숫자가 저기 있는거야. 몇 달 전에 처음 본 이후로는 단 한번도 본 적 없던 저 숫자가, 왜 저기 있는건데?? 저기엔 분명, 내, 내, 내 피땀어린 기록이 있어야 하는게 분명한데 왜!!!!!!!!!!!!!!!!! 멍, 한 눈으로 모니터에 떠있는 네모난 창을 바라보던 내 뇌로, 다섯 글자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점수 초기화. 기록 아래에 있는 두가지 버튼은 각각 [점수 초기화]와 [확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항상 나는 확인 버튼만을 눌러왔고, 점수 초기화라는 버튼을 눌렀을 때 일어날 끔찍한 일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 기록을 세울 땐 언제나 신중히 확인을 하곤 했었다. 눈에 들어오는 저 빙글, 웃고 있는 잘생긴 얼굴 따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못알아챌 정도로 병신은 아니란 말이다, 이 함단열은. "이 망할 변태새꺄!! 이제 니가 사기꾼짓도 하는 거냐!! 미쳤어! 미쳤어 진짜!! 내가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데에에에에에!!!!!!!!!!!!!!" 냅다 달라들어 주먹질을 해대자, 빠른 손놀림으로 내 양팔을 가볍게 쥐고는 끌어당기는 바람에 녀석의 품에 안겨버렸다. 익숙해진 체취가 느껴지자 가슴이 자동으로 뛰어오르는데. 됐어, 이 정도로 내가 용서해 줄 성 싶으냐!!!!!!! 그게 얼마나 원대한 프로젝트였는데에에에에에!!!!!!! "나쁜 새끼...이 변태 새끼!!!!! 사기꾼!! 으아아아앙~~~~~~~~~~~~" 품에 안긴채로 버둥버둥 거리며 양팔을 휘둘러 되는대로 때려대는데, 왠지 모를 억울함에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투두둑, 하고 떨어져나와 녀석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 우...우는거야 너 지금??" 아-주 어이없다는 말투가 귓전을 때렸지만, 이미 한번 터져나온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봇물 터진 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아예 대놓고 엉엉거리며 울어대자, 후-하고 한숨을 내쉰 도훈이놈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려준다. "울지마. 미안하다, 장난으로 대해서. 넌 너 나름대로 대단한 결심을 했던 것 같던데 무시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마라." 원래 서럽고 억울하고 슬픈데다 분하기까지 해서 흘러나온 눈물은, 누군가가 위로해주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던져주면. 더더욱 북받쳐오르기 마련이다.-_- "으허어엉...엉엉......컥....흐어엉~~~"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억울한 건 억울한 거지만, 녀석의 부드러운 손길과,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품에 안겨있는 기분이 좋아져서, 슬슬 느껴지는 창피스러움을 무시하고 녀석의 등에 팔을 감고 모른 척, 계속 울어댔다. "........알았어. 위에서 하게 해줄께. 이제 뚝." 뭐. 뭐. 뭐어라아고오오오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엉?!!!! 위에서 하게 해준다고 말한 거 맞지!!! 저, 명도훈이!!!!!! 저 녀석이 아까처럼 치사발칙한 짓을 가끔 하긴 해도, 한번 내뱉은 말 모른 척할 새끼가 아니라는 것 쯤은 익히 알고 있다. "지, 지, 진짜아~?" 고개를 빼꼼히 들고 녀석의 표정을 살피자, 조용히 웃으며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얼굴을 닦아주며 말한다. "울기까지 하는데 이겨낼 방도야 없지." 천지신명이여, 온갖 신들이시여......정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아아아!!!!!! 머리위에 축포가 터지며 천사들이 빵빠레를 불어대는 광경이 연상되며,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초롱초롱 치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건데. 나는 어느새 달아오른 몸을 하고, 한번 방출해버려 풀죽은 물건을 쓰다듬는 손길에 반응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흣....사기꾼아!!!! 위, 위에서 하게 해준다고......아학..!!" "기다려봐." 낮게 잠긴 목소리가 지나치게 섹시해서, 그 목소리 만으로도 나는 바짝 서버렸다. 큭큭, 웃으며 녀석의 탄탄한 어깨가 내려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커다란 손가락이 감싸쥐고 있는 내 건강한 아들놈의 부활을 확인하기도 전에, 익숙해진 쾌감 때문에 이미 움찔거리고 있는 뒤로, 녀석의 것임에 분명한 길다랗게 뻗은 손가락이 파고 들어온다. "아앙.....이, 이런게 어딨...어.......야, 약속은..지...지키란 말야!!!!! 읏.." 내벽을 긁어대는 선연한 느낌에 자극받아, 머리에서부터 터질 듯 열이 올라와 앞이 깜깜해진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좀 더 거칠고, 좀 더 세밀해졌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꼼꼼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시킨다면 애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주 충실하게 나를 자극시켜놓고는, 그때서야 녀석이 입을 열었다. "됐다 이제." 뭐, 뭐가. 지독하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두 팔이 나를 들어올리더니. 귓가를 지끈, 깨물고는 속삭인다. "소원대로, 위에서 하게 해줄께." 뭐, 뭐라고?? 쾌감에 달아있던 몸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하게 해줄께]라는 주문같은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데. "으아아아아아앗!!!!!!!!!!!" 어쩐지 명도훈 답게 정확한 각도를 조준한 후, 예고없이 푸욱- 내려앉혀지는 바람에, 나는 본의아니게 입을 따악 벌리고 시끄러운 비명을 질러대야만 했다. 이, 이, 이, 변태사기꾼 개새꺄!!!!!!!!!!!!!!!!!!!!! "하악....하악..........이...이.....망할 사기꾼 새끼......" 내가 듣기에도 처연해보이는, 다 죽어가는 쉰 목소리를 겨우 끄집어내어 욕을 퍼붓자,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와 몸을 닦아주고 있던 도훈이놈이, 씨익, 웃는다. "만족했어? 나름대로 연구 많이 했는데." 연구라니. 어떡하면 위에서 날 다각도로 내리꽂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 말이냐? 개새끼. "닥쳐, 이 사기꾼아...윽......거짓말만 하고...너 나 좋아한다고 한 것도 거짓말 아냐?" 부드러운 놀림으로 몸을 닦아내던 손길이, 농담처럼 뚝, 하고 끊기는 바람에 조금 움찔한 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죽어도 싸, 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길쭉한 눈매가 딱딱하게 굳고 새까만 동공에선 차가운 빛이 흘러나와, 너무나도 명확하게 화 났음-을 증명해대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지금 화 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지놈 새끼가 화를 내??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냐. 아닌 거 아니까, 그렇게 굳지 마, 무섭단 말야." ....평화로운 연애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끝에는 약간 투정부리듯 말하자, 그제서야 굳어있던 눈매가 슬며시 풀린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마. 안그래도 불안해 미치겠으니까." 불안? 누가? 니가?? 미심쩍은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땀에 젖어 늘러붙은 내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녀석이 말을 이었다. "너, 한번도 섹스하고 나서 좋았다고 말해준 적 없잖아." 너, 너, 너 지금 짓는 그 표정, 그거 삐진 듯한 표정 맞냐? 아니면 내 눈이 잘못된건가?? 저, 천하의 명도훈이 저런 표정을 지을리가!!! "그게 사람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 줄 알아? 고백한 것도 나고, 치사하게 게임따윌 이용해 널 붙잡은 것도 난데. 만족시킬 수 없을까봐 고민하느라 미치겠단 말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가늘게 뻗은 눈매가 일그러지는 걸 보는데, 가슴이 찡-하고 울려왔다. 생각해보면 녀석은, 관계후에 꼬박꼬박 물어왔었다. [좋았냐]고. 물론 나는 단 한번도 대답해준 적은 없다. 녀석과의 섹스후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얼굴을 마주대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땀에 젖은 맨 몸으로 녀석과 함께 누워있는게, 얼마나 창피스럽고 얼마나 민망하며 얼마나 부끄럽냐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녀석에게 엉겨붙으며, [응~ 자기 너무 좋았어~]하며 콧소리 섞어 말할 수 있는 교태가 나에겐 전무하다. 뭐, 보통은 팩, 하고 등을 돌린 채 벽에 달라붙다시피 하곤 했었다. 그게. 너를, 불안하게 한거야? "그렇다고 나에게 잘해줘야겠다고 너무 부담갖진 마라. 미안해하지도 말고. 나는, 니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눈에서, 툭, 하고 눈물이 떨궈져 나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던 거였어?? 나는, 나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먼저 반했었던 주제에, 네놈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여유로워서, 나는 그게 싫었어. 금방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친구]의 얼굴로 돌아가버릴 것 같은 니가 불안해서. 그런데 어쩌면 그건,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너의 배려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식어버린 물수건을 다시 따뜻한 물에 담가 물기를 짜낸 후, 내 등을 닦아주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든다. 그런 표정 짓지마, 안어울린다 명도훈. 굳어있는 얼굴에 슬며시 다가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술을 부딪혔다. 조금 마른듯한 입술이 안타까워 혀를 내밀어 살짝살짝 핥아 적셔주고는, 녀석의 입술을 파고 들어갔다. 서투른 키스지만, 나는,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녀석에게 매달렸다. "하아.......나는." 시작은 내가 했어도, 결국 테크닉의 레벨 차이는 어쩔 수 없는거다. 결국 또다시 질질 끌려가 한참을 붙잡혀있은 후에야 입술을 뗀 후, 몽롱함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숨을 들이쉬며 말을 꺼냈다. "나는 니 그 빌어먹을 여유로운 표정이 맘에 안들었어. 니가 먼저 좋다고 했으면서, 좀더 강하게 날 붙잡았어야 하는 거 아냐? 금방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그 표정이 싫었어!!! 내가 왜 위에서 하겠다고 우겼는 줄 알아?! 네놈의 그 여유만땅의 얼굴이 좀 더 나를 원하는 얼굴이 되길 바래서였단 말이다 이 망할 자식아!!!!" 격하게 내뱉은 후 고개를 들자, 드물게 보는 멍-한 표정의 도훈이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 육감적인 입술은 슬쩍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도훈이놈의 날카로운 턱선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나는 진심을 담아 녀석과 시선을 맞췄다. "놓지마, 나를. 이젠 내가 떨어져나갈 생각이 없다구." ".....고맙다, 함단열." 몇백마디를 함축한 것 같은 짧은, 억눌린 듯한 목소리에 다시금 눈시울이 뜨겁게 차올랐다. 내가, 언제나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로, 정말 오늘은 서비스다. "나, 키스해줘." 입술을 내밀며, 최대한 유혹적이라고 느껴질만한 표정을 애써 짓고는 녀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곧 후회해야만 했다. 녀석의 두 눈이, 위험할만치 반짝거리며 내게 다가왔기 때문에. 결국 거친데다 이성까지 잃고 날뛰어대는 녀석을 상대하느라 온 몸이 뽀사질 듯 아파왔지만, 결국 보지 않았느냔 말이다. 녀석의, 흥분한 모습을...♡ "발뺌할 생각은 집어치우죠, 주장. 지뢰찾기 기록 세워준 거, 누굽니까." 싱긋, 웃고 있지만 보이지않는 제3의 눈이 서늘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기분을 느끼며 주장은 어색하게 웃어댔다. "하하, 나, 나긴 한데, 너, 너무 그럴 거 없잖냐, 명도훈. 그땐 어쩔 수 없이...." "대회 출전 취소하겠습니다." "야!! 그건 안돼 임마!!!! 그건 그 이전의 약속이었잖아!!!!!!" 흥, 하며 무시한 채 돌아서려는 도훈의 뒷통수에 대고 주장은 애써 큰 소리로 외쳤다. "그, 함단열의 지뢰찾기 기록을 깨주면, 분명히 전국대회에 출전해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멈칫 하며 문앞에서 멈춰서는 도훈에게 재빨리 다가간 주장은, 애원하듯 입을 열었다. "부탁한다, 명도훈. 전국대회 우승을 위해서는, 네 녀석이 없으면 안된단 말이다. 제발..." "......뭐." 후-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도훈은,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쩔 수 없군요, 주장이 그렇게 애원한다면.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만." "조, 조건?? 하지만 어차피 이 약속은 예전에 지뢰찾기 기록을 깨준 것으로....." "싫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로서도." 곧은 어깨선을 한번 으쓱한 후, 고개를 돌리고 단정한 태도로 문을 나서려는 도훈의 팔을 붙잡아 매달린 주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를 끄덕끄덕거릴 수 밖에 없었다. "지뢰찾기 기록, 136초를 깨주셔야겠습니다." 매력적인 눈매에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주장이었다. 끝, 끝입니다. 하하.